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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to My Daughters

by Duckja Park

/ 박덕자

 

우리들의 교환 일기

 

지금은 고등학생인 첫아이가 초등 4학년쯤부터 이른 사춘기가 슬슬 왔었다. 어릴 적에는 나에게 이런저런 자신의 고민들을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그 즈음부터는 주로 친구들하고만 이야기를 해서 내심 서운했었다. 더 이상 엄마에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혼자만 끙끙 앓는 아이에게 교환일기를 같이 써보면 어떠냐고 제안했었다. 당시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 쪽지 주고 받기와 교환일기가 유행이던 때였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문자와 화상통화가 당연한 세상이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우리는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 분홍색 다이어리에게 ‘키티’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편지나 그림,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어느덧 아홉 해째다.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대나무 숲에 큰 소리로 외치듯 후련하게 쓰기도 했었고 또 가끔은 남편이나 아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들을 살짝 써 놓기도 했다.

디지털시대에 좀 뒤떨어진 것 같지만 교환일기장에 하루를 뒤돌아보며 한 글자 한 글자 손 글씨로 써내려 가는 아날로그의 삶이 참 좋다.

해외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소소한 일들로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시나브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살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일기장엔 언제든지 마음을 시원하게 털어 놓을 수 있어서 좋다.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가족들과 함께 써 봐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언제나 희망과 용기를 얻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 설 수 있으니까 말이다.

 

 

 

2009년 1월 3일이 15분 남았네~

 

사랑하는 두 딸들에게 이렇게 비밀 교환일기를 쓰게 되어서 엄마는 너무 행복하단다. 아기일 적엔 너희들의 육아일기를 쓰면서 사랑스런 순간을 많이 기록하고 감사 했었는데 요즘은 짜증을 많이 낸 것 같아 미안해. 고치려고 노력 중인데 얼른 안 고쳐지네. 미안해. 엄마가 더 노력할게.

아빠가 안 계신 빈자리가 너무 커서 그런지 아직은 어린 너에게 자꾸만 빨리 어른이 되길 기대하고 있었나봐. 너는 충분히 잘 하고 있는데 말이야.

떼쟁이 동생에게 양보만 하느라 힘들어도 항상 믿음직하게 네 일을 잘 해줘서 고마워. 사랑하는 내 딸내미~ 아빠가 이제 곧 돌아오실 텐데 우리의 더 씩씩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자. 2009년 새해야. 또 다시 한 번 열심히 노력하자. 사랑해.

 

 

2009년 1월 12일 월요일

 

엄마... 나도 전화영어 선생님께 명인이처럼 이야기를 잘 하고 싶어.

알다시피 내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잖아? 그래서 말하기가 부끄러워. 내가 노력하고 있으니까 엄마가 나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현지 말이야. 귀엽고 예쁠 때도 있지만 고집부리고 화낼 때는 화가 나기도 하고 걱정도 돼. 이러다가 유치원가서 애들을 때리지는 않을까?

나는 엄마가 항상 좋아. 알지? 뽀뽀 쪽!

 

 

2009년 봄방학에

 

나도 아빠가 보고 싶어서 괴로워. 엄마, 이제 엄마가 아픈 게 다 나았는데 또 내가 아프네. 엄마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

엄마 고백할 게 있어요. 내가 거짓말을 했어요. 지금이라도 말할 테니 혼내지 마세요.

저번에 숙제 해놓은 내 공책에다 현지가 그림을 그렸을 때도 속상했지만 참았어요. 하지만 오늘은 나를 계속 귀찮게 하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나를 밀려고 해서 나도 모르게 현지 손을 꽉 잡았어요. 현지는 더 화가 났는지 가방을 던졌어요. 그래서 나는 현지를 밀어 버렸어요.

엄마 죄송해요.

현지가 우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도 모르게 화가 풀렸어요. 그리고 동생이랑 다투느라 숙제도 다 못했어요.

울다가 잠든 현지한테도 미안해요.

엄마는 나를 항상 믿고 있는데......


 

2009년 5월 27일 수요일

 

헬로 키티야? 나 너무 슬퍼. 왠지 왕따 당하는 기분이야. 혜원이, 가윤이, 지은이랑 내가 우리 반에서 제일 친하거든. 오늘 자연탐구대회를 하는 날이라서 선생님께서 다니고 싶은 아이들이랑 같이 관찰을 하라고 말씀을 하셨거든. 그래서 나는 당연히 우리 넷이서 함께 갈 줄 알았어. 그런데 셋이서 끼워주지를 않는 거야. 결국 다른 친구들이랑 했어.

기분이 안 좋고 슬퍼. 내가 뭐가 부족한 걸까? 헬로 키티야.. 어떻게 하면 좋지? 자기들은 뭐가 잘났다고 거절만 하는 걸까? 항상 "미안 다음에" 거절만 잘하는 ‘다음에쟁이들’이란다. 기분이 나빠.

 

엄마가... 사람은 누구나 살다보면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끼거나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단다. 엄마도 가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감정이 들 때가 있어. 너만 그런 게 아니란다. 이런 안좋은 느낌을 이겨 낼 수 있는 비밀을 알려줄게. 그건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해주고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인 것 같아. 너의 곁엔 항상 가족이 있단다. 엄마는 무조건 네 편이야.

넌 소중한 사람이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사랑해. 콩순아.

 

 

2010년 11월 3일 수요일

 

하하... 오랜만이야. 새 학교에서 적응하느라 너를 새까맣게 잊어버렸네. 그 동안 넌 잘 지냈지? 나 정말 이번 경시 대회를 망쳤어. 휴~ 게다가 학교에선 여자아이들 사이에 베프 문제로 머리가 아파. 왠지 뒷통수를 때린 거 같은 친구가 얄미워. 넌 그런 기분을 모를 거야. 그럼 안녕 키티야.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하 앙...ㅜ.ㅜ 수두에 걸렸다. 간지러워 죽을 것 같다. 학교를 일주일이나 빠져야 한다. 기말 시험이 코앞이다. 그 시간이면 모든 과목들이 엄청난 속도로 거의 절반씩 끝난다. 사회는 정말 진도가 레이씽 카 수준이다.

하필이면 시험을 앞두고 수두라니... 간지러우니까 만사가 귀찮고 가만히 앉아서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다. 난 그냥 썼을 뿐인데 엄마가 보고 말았다. 피가 얼어붙는 순간 이었다.  여기에 오래 꽂혀 있으니까 엄마가 키티를 잊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엄마가 내 마음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걸까?

참 신기하다.

 

 

2012년 3월 9일 금요일

 

2박 3일 동안 연락도 없다니 너무 한다. 어제는 하영이 침대에서 잤다. 요새 날씨가 엄청 더운데 잠은 잘 잤겠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다.

잘 지내다가 보자. 우리는 싱가포르 생활에 점점 적응해 가고 있다.

 

 

2012년 5월 24일 목요일

 

오늘도 오유링이 학교에 안 왔다. 그 아이는 나를 귀찮게 하는 아이다. 내가 문구점에서 사는 물건은 다 달라고 하고 다른 친구들이랑은 못 놀게 방해를 한다. 그래도 에쉴리랑 언잉은 착해서 다행이다. 무엇보다 나는 림비비 선생님이 너무 좋다. 뉴타운초등학교에서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다음 주는 방학이다. 야호!

 

 

2013년 4월 어느날에

 

여기로 이사 와서 정신없이 1년이 또 지나갔다. 우리 귀염둥이 현지가 더 튼튼해져야 할 텐데 걱정이다. 내 표현력이 부족한 걸까? 아이들에게 더 사랑한다고 자주 안아 줘야겠다. 매일 가방 안에 넣어 주는 편지를 자주 깜빡한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족과 건강이다.

 

 

2014년 12월 25일 목요일

 

엄마가 요새  더 안 좋으셔서 걱정이다. 곧 뭄바이로 떠나야 하는데 도통 마음이 놓이지가 않는다. 항상 불효녀 인거 같아서 죄송하다.

 

( 하늘나라에서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계실 아빠에게 )

 

저 이곳에 온지도 일 년 반이 지났어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서 잘 지내고 있어요. 지난번 글쓰기 클럽에서 아빠에 대한 글을 쓰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 올리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엉엉 울었어요.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이지만, 남들 앞에서 울었다는 게 너무나 창피했지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오늘은 아빠가 그 곳으로 떠난 지 십칠 년째 되는 날이네요. 정말이지 시간이 너무나 야속하게 흘러가네요.

엄마는 저번에 양쪽 관절 수술을 하셨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 중이시네요.   못난 저만 멀리서 이렇게 도움도 못되고 동생들이 다들 고생하고 있어요.

어릴 적엔 아빠가 출장을 다녀오시면 이번엔 선물을 뭘 사오셨을까 트렁크 속이 궁금했었던 철없던 나였는데.. 그 때가 그립네요.

왜 전 아직도 세계 여러 나라의 선물 중에서 인도 코끼리상과 테이블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언제인지 모르게 상아는 다 빠져 버렸고 테이블 모서리는 깨져서 볼품이 없지만 그걸 바라볼 때 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건 어쩌면 아빠가 이어 주신 인도와의 인연이 아닐까 하구요. 더 부지런히 잘 살게요.

너무나 보고 싶고 사랑해요 아빠.

 

2016년 11월 1일 화요일

아빠를 그리워하는 큰 딸이

 

 

 

( 그림자조차 그리운 두 보물들에게 )

 

너희들이 여행간 며칠 동안 엄마는 너희들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단다. 언젠가는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가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그 시간이 너무 일찍 와 버릴 거 같아서 주체할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꼈단다. 엄마로서 너희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시간에 행복했고 감사하단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갈게. 사랑한다.

     

2016년 11월 10일

 

너희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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